어머니가 점심을 만들고 있을 때, 침실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는 위층으로 달려 올라가 아버지가 카펫 위에 엎드려 계시고, 눈 밑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아버지는 며칠 전부터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에서 항암 치료를 한 차례 받은 후 어지럽고 피로감을 느껴왔다. 아버지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계셨는데, 갑자기 모든 것이 깜깜해졌다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쿵.

어머니가 아버지를 바닥에서 일으키려 애쓰는 동안, 아버지는 이제 그만두겠다고 다짐하셨다. 서양 의사들은 '사기꾼'이고 '돌팔이'라며 그만두겠다고, 몸속을 흐르는 '독약'도 그만두겠다고, 믿지도 않는 구역질 나는 치료도 그만두겠다고. "이대로 계속하면 죽을 거야"라고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그날 저녁, 눈이 멍들고 목이 뻣뻣한 상태로 아버지는 뉴저지에서 애리조나로 가는 비행기 표를 예약하기로 결심했다. 인터넷에서 찾은 한 클리닉을 확인해보기 위해서였다. 당시 그 클리닉, 엔비타 메디컬 센터의 웹사이트에는 그들의 독특한 프로토콜이 환자들이 "거의 20년 동안 다른 유명 암센터들을 능가하는 성과"를 내도록 도왔다고 적혀 있었다. 그들의 '독점적' 항암 치료는 "너무나 순해서, 많은 환자들이 치료 중에 하이킹과 운동을 할 수 있다고 보고한다"고 했다. 아버지는 주당 거의 1만 달러에 달하는 이 외래 클리닉이 몸을 망가뜨리는 4기 폐암으로부터 자신을 구해줄 수 있다고 믿었다.

여러모로 이것은 예측 가능한 전개였다. 암에 걸리기 훨씬 전부터, 63세였던 아버지 라지브는 공포증에 가까운 강도로 전통 의학을 피했다. 그는 살균된 대기실, 냉담한 의사들, 값비싼 약들을 혐오했다. 예리하고 성공한 기업가였던 그는 의사들이 보험 청구를 제출하도록 돕는 작은 사업체를 만들었는데, 그 경험이 의료 산업을 여과 없이 보게 해주었다고 자주 말하곤 했다.

현대 의료 시스템은 그에게 자신의 아버지, 즉 맨해튼 미드타운에서 대체의학 병원을 운영했던 인도 동종요법 의사에게서 배운 두려움을 상기시켰다. 환자들은 TV 인터뷰와 강연 시리즈를 통해 할아버지를 찾아 전국 각지에서 몰려들었는데, 그곳에서 그는 백신은 위험하고 미국 아이들은 약물 과잉 처방을 받는다는 자신의 견해를 퍼뜨렸다. 그는 또한 청중에게 1700년대 후반에 개발된 입증되지 않은 대체 의학인 동종요법의 치유력을 가르쳤다.

나는 항상 아버지의 현대 의학에 대한 집착이 극단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진단 초기에 사소한 모욕들이 쌓여가는 것을 보면서 그의 관점을 이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뚝뚝한 외과의사. 컴퓨터에서 한 번도 눈을 떼지 않는 간호사. 대기실에서 낭비되는 시간들, 끝이 보이지 않는 치료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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